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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의 첫 시집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책일까』를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도도한 자의식의 물결이었다. 시집 제목만 보아도 나를 읽어내겠다는강렬한 욕망을 보여준다. 사실 ‘나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괴롭기 짝이 없는 작업이며 동시에 일상 너머의 문제이다. 시가 초월적 양식이라는 점은 이러한 부분에서 명백하다. 나에 대한 규정과 나를 읽어내는 여행은 이 시집을 큰 테마를이루고 있다.이가영 시의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떠돌이 혹은 변두리 의식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안주의 욕망과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에 나타나는 “비행”과 같은 의미를 띤다. 즉 일상적 욕망과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이가영의 의식 세계를살필 수 있다.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재치이지만 범박한 일상 속의 즐거움 혹은 깨우침 같은 것을 동반한다. 가령 마릴린 먼로의 생을 형상화한 시에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길, 길이 멀어서 서둘러 떠나버린 마릴린 먼, 路”(「마릴린 먼로」 부분)나 “역시 아재는 첫손에 꼽을 정도 花술이 뛰어나다”(「미나리아재비꽃」 부분)와 같은 시들이 언어유희를 구사하고 있는 부분들이다.『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책일까』를 읽으며 한 시인의 강렬한 자의식을 만났다.수많은 비유들이 시적 여정 혹은 시를 향한 외로운 싸움으로 읽히는 이유는 내면화된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의 발로일 터다. 야생의 시인으로서 더 황막한 곳,더 울 만한 곳, 더러 무인지경에 이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