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ISBN
    978-89-522-3675-3 (03840)
  • 저자
    미치 앨봄
  • 제본형식
  • 형태 및 본문언어
    280쪽
  • 가격정보
    12,000원
  • 발행(예정)일
    2017.06.16
  • 납본여부
    미납본
  • 발행처
    (주)살림출판사 - 홈페이지 바로가기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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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0주년 기념 서문



스승이 남긴 최고의 유산



나는 구슬픈 소리를 들으며

무덤들 주위에 한동안 서 있었네.

내가 말했지.

“친구들이여, 고달픈 인생살이를 면한 마당에

어찌하여 괴로워하는가?”

- 토머스 하디 「잊히는 것」

모리의 묘에 다녀왔다. 사실 여러 번 갔다.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려고, 나중에는 관계를 잇기 위해서. 흔히 묘소를 찾는 걸음은 점차 뜸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난 모리의 생전에도 한 차례 연락을 끊은 적이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성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20주년판에 실을 이 글을 쓰기 1주 전이었다. 대학은 개강해서 후드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로 가득하고, 나뭇잎은 떨어지기 전에 찬란한 색으로 물드는 초가을이었다. 뉴턴 묘지의 촉촉한 잔디밭에 나뭇잎이 뒹굴었다. 나는 익숙한 길을 걸어, 모리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묘비로 걸어갔다.

무릎을 꿇고 묘비에 적힌 날짜를 보았다. 그러다가 움찔했다. 어언 내 나이가 화요일마다 만나던 시절의 나보다 모리의 나이에 가까웠다.

나는 “안녕하세요, 코치.”라고 운을 뗐다. 항시 이런 대화를 시작하려면 쑥스럽다. “그 윗동네는…… 어때요?”책을 넘겨보니 모리가 묘를 찾아오라고 당부한 대화 장면이 요약되어 있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난 아무튼 묘소에 갈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모리는 ‘과연 그럴까’ 라는 의미로 씩 웃었다.

그가 쉰 소리로 말했다.

“흔히 성묘하는 것처럼 오라는 게 아닐세. 엔진을 켠 채 차에서 내려 달랑 꽃만 놔두고 다시 차에 오르는 식으로 말고……. 시간이 있을 때 오게나. 돗자리를 들고.”

돗자리?

“샌드위치도 챙겨서.”

샌드위치?

“그리고 나한테 말을 하게. 인생살이에 대해, 고민거리에 대해. 월드시리즈(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경기-옮긴이)에 어느 팀이 진출했는지 말해줘도 좋겠군.”

나는 웃으면서 교수님을 놀렸다. 세상에, 누가 공원묘지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허공에 대고 말을 할까?

“사람들이 신고할걸요.”

내가 이렇게 농담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훌륭한 스승답게 ‘출석’을 다짐받는 게 왜 중요했는지 이제는 안다.

이 책을 낸 지 20년이 흘러서야 마음 깊이 깨닫는다. 모리를 힘들게 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잊히는 것이었다.지금 보면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었다. 내 스승은 살아서 우리 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후 더 유명해졌다. 이 작은 책은 1997년 출판된 후 전 세계의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 모리가 무척 반겼을 일이다.

또 TV 영화로 제작되었고 자주 연극으로 공연되어, 모리의 지혜는 무대와 스크린에서 계속 살아 있다.

하지만 모리가 가장 바란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일이었다. 땅속의 재로 돌아간 지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분명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될까?

앞에 실린 토머스 하디의 시에는 무덤에서 나는 목소리를 들은 내용이 담겨 있다. 목소리들은 죽고 나서 잊히는 건 ‘두 번째 죽음’을 당하는 것이라며 서글퍼한다.

『8년의 동행』을 집필할 때, 랍비 앨버트 루이스는 그가 언제까지 사람들에게 기억될지 물었다. 그건 쓸데없는 걱정 같았다. 공동체에는 그의 추종자가 아주 많았으니까. 그런데 랍비 루이스는 내게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아마 자식들은 분명히 기억할 거라고 했다. 손주들까지도. 하지만 손주들의 자녀들은? 아마 사진을 통해 알겠지. 그러면 그들의 아이들은? 흠. 자신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고조부, 고조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지.

사실 특별한 내력이 있지 않다면 삼 대째 후에도 내가 의미 있게 기억되기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어떻게 계속 살아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내 스승이 자주 말했듯이, 죽음으로 삶이 끝나도 관계는 끝나지 않게 할 방법이 뭘까?

모리는 생전에 부자도 아니었고, 유명하지도 않았고, 누구나 아는 이름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기억되는 인물이 된 비결은 뭘까?

난 답을 알 것 같다.이따금 화요일에 방문객들이 교수님을 찾아오곤 했다. 내가 약속을 잡지 않은 날엔 모리는 방문객들을 만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일정한 패턴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모리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찾아와서, 그의 방에서 한 시간쯤 보낸 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왔다. 모리의 슬픈 처지가 안쓰러워 우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직장 문제, ‘자신의’ 이혼 문제, ‘자신의’ 고민 때문에 울었다.

“교수님의 기운을 북돋워 드리려고 찾아왔는데, 도리어 고민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말씀드리니 모리가 더 상세히 물었고 결국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울게 되더군요…….”

“교수님께 위로를 드리려고 왔다가 결국 제가 위로 받는 것으로 끝났네요.”

마침내 어느 화요일, 나는 모리에게 이 문제를 꺼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네 문제 말고 내 문제를 말해 보자.’ 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코치라고요. 아프시잖아요. 진짜 힘든 병인데, 왜 사람들의 연민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으세요?”

모리는 빤한 걸 묻느냐는 듯 눈썹을 치떴다.

“미치, 내가 왜 받아들여야 하지? 받는 것은 내가 죽어 가는 느낌을 준다네. 하지만 베푸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베푸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심오한 말이다. 그리고 과연 맞는 말이다. 그 반대는 거짓이니까. 받는 것, 소유하는 것은 살아 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마케팅, 영리주의, 광고계의 기본이겠지만, 모리는 ‘문화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새 차, 새 옷, 새 평면 TV를 소유하는 것. 이런 것들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일시적인 흥분감이 있지만, 신제품 냄새가 빠지기도 전에, 품질 보증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다.

모리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가진 물건은 죄다 ‘구닥다리’라고 할 만했다. 대신 모리는 다른 것에 투자했다. 자신을 내주는 것에. 어느 시점에서 자신을 주는 것이 영원히 사는 방법임을 간파했다. ‘주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이것이 출간 20년을 맞은 지금,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의 대답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으로 가득한 생각들과 경구들은 모리가 주는 가르침의 핵심이다. 살면서 어떤 순간을 맞이하던 내가 경험했듯이, 그의 가르침은 마음에 떠올라 빛을 비춰 줄 것이다.

하지만 모리의 ‘주는 것이 사는 것’이란 말은 그저 여러 가르침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철학이고 ‘레종데트르(존재의 이유)’며 어쩌면 그의 비법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비법으로 남아 있다가, 결국 때가 되자 가르침들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천에 염료가 천천히 퍼지듯이 그랬다. 코치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그의 격려에 힘입어 공동체와 자선사업에 더 깊이 관여해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과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이티에 가서 고아원을 운영하게 되어 매달 한 번씩 방문했다. 모리와 처음 화요일에 만난 지 딱 20년이 되던 해, 급성 뇌암에 걸린 다섯 살 된 여자아이를 알게 되었다. 내가 염려하면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또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연장자였고 상대는 어린 아이였으며, 중간에 간여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만 달랐다.

나는 여자아이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모리의 최고 유산을 계승하는 첫 경험이었다. 그 유산이란 선생이 되는 것이다.

화요일을 함께 보내면서 얻은 가르침들을 나 혼자만 누리지 않고 소중한 아이의 영혼을 위해 되새겨야 했다. 우리 부부는 시간과 의학이 허락하는 한 아이에게 풍성한 삶을 선사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1년 반 동안 아이는 우리와 한 방에서 잤다. 나는 아이에게 베풀려고 노력했고, 그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살아 있는 느낌을 맛보았다.

최근 묘소에 갔을 때, 모리에게 바로 이 이야기를 했다. “주는 것이 사는 것이다. 코치, 그 말씀이 옳았어요.”

“나처럼 건강한 노인은 없을 게야.”라고 말하는 모리가 떠오른다. 나도 그런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자신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혈통, 유전적 특징, DNA, 예고 없이 겪게 되는 사고 등은 손써볼 수 없는 것들이다. 다섯 살에든 일흔여덟 살에든.

내 손이 닿는 것들은 모리가 늘 얘기한 일들이다. 어느 날 어깨에 앉은 새를 힐끗 보던 눈길,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인가?’라는 질문, 그날 새의 분명한 대답 “맞아요”.

베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시간을, 마음을, 자신을. 바로 그게 하루를 또는 후손을 통해 대대로 사는 방법이다. 모리는 이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왜냐면 그는 베풀었으니까. 모리는 죽어 가면서도 어느 고집쟁이 학생에게 베푸는 데 시간을 썼다. 그의 가르침을 읽은 사람이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그가 또 다른 이에게 전했고 이젠 그의 제자들이 정말 많아졌다. 그가 이제는 고인이 되어 여기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모리의 묘소에 자주 들른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모리의 강의실에 들른 것이다. 그리고 우린 잔물결이 아닌 바다의 일부로서 연결되어 있다. 우리를 연결하는 것은 단신의 은발 신사, 우리에게 계속 감동으로 살아 있는 그분이다. 이것이 내 스승이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지금 코치가 어디에 계시든 이걸 알고 씩 웃으시면 좋겠다.



미치 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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